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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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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reo 작성일25-04-27 17:28 조회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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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기자말>[이영천 기자]내포에서 융성한 불교는, 지리적으로 태안이 그 시원이다. 중국에서 뱃길로 태안반도에 닿은 불교가, 웅진과 사비를 향하며 골마다 번성해 나갔다. 가야산 동쪽 분지, 흥선대원군 아버지인 남연군 묫자리도 본 주인은 대사찰이었다. 풍수지리를 신봉한 대원군이 가야사를 불사르고 묘를 쓴 일화는 지금도 입방에 오르내릴 지경이다.서산 운산에 가면 바위를 뚫고 나온 '서산마애삼존불'을 만날 수 있다. 백제의 미소라는 삼존불은 온화함과 평온 그 자체다. 마주하는 이는 물론 주변 초목도 미소 짓는다. 마음으로 주고받는 염화미소의 정수다. 옅게 남은 붉은 입술에선 사그라든 정염의 오묘함마저 느껴진다. 이런 소회가 존엄엔 무례일까?삼존불의 온화한 웃음, 덩달아 미소 짓는다▲ 서산마애삼존불'백제의 미소'라는 칭송을 받는 서산시 운산면 소재 마애삼존불.ⓒ 이영천 태안에서 또 다른 삼존불을 만날 수 있다. 읍성의 북풍한설을 막아선 백화산에서다. '태안마애삼존불'로 서산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모습만 뚜렷할 뿐,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마모되었다. 가운데 작게 조각된 관음보살을 좌·우로 크게 조소된 석가여래와 약사여래불이 어딘가로 인도하는 모습이다. 딛고 선 연화대가 허공에서 미래를 향해가는 느낌이다. ▲ 태안마애삼존불백화산 태을암에 있는 태안마애삼존불. 땅에 아래가 묻혀있던 걸 파낸 당시 모습이다. 지금은 집을 지어 보존 중이다.ⓒ 국가유산청 서로 다른 표정의 현시인 이들 삼존불은, 불교가 퍼져나간 행로에서 제각기 중생을 충실하게 포용했으리라. 어느 날 갑자기 태안이 다시 돌아왔다. 땅이 새로 열린 개벽처럼 말이다. 1914년 일제가 서산에 편입시킨 후 75년 만인 1989년이다. 고려 말과 조선 초, 왜구의 극심한 침탈에 당시 수령들이 아전 몇과 함께 서산과 예산을 전전한 역사에 비하(서울=연합뉴스) 고려대학교 박물관은 다음 달 1일부터 개교 120주년 기념 특별전 '120년의 高·動(고·동), 미래 지성을 매혹하다'를 선보인다고 27일 밝혔다. 국보 '동궐도'(東闕圖)는 경복궁 동쪽에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그림으로 가로 길이가 5m를 넘는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복제본과 실물 일부도 볼 수 있다. 사진은 국보 '동궐도'. 2025.4.27 [고려대학교 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photo@yna.co.kr▶제보는 카톡 okje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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