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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race 작성일25-04-02 12:28 조회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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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까르띠에 love 팔찌 제작 3대 아트북 출판사 ‘애슐린’에서 발행한 치풀로의 예술 세계까르띠에 부티크의 그의 진열장(vitrine)에서 알도 치풀로, 1970년 © Courtesy Renato Cipullo/All Rights Reserved​​​​까르띠에의 유명한 컬렉션인 ‘러브LOVE’와 ‘저스트 앵 끌루Juste un Clou’를 디자인한 천재 디자이너, 알도 치풀로Aldo Cipullo.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디자인 역작은 일찌감치 그 가치를 알아본 까르띠에의 안목과 만나 찬란히 꽃피울 수 있었다. 현대 주얼리 역사에서 혁신적인 재능으로 인정받는 알도 치풀로의 일대기를 담은 책이 발간되어 다시 한번 그의 업적이 조명 받고 있다. 세계 3대 아트북 출판사인 애슐린Assouline이 그의 일대기를 담은 아트북, ;을 발행한 것. 업계에 혁명을 가져온 디자인 이야기와 알도 치풀로의 전기를 자세히 담아낸 명품 서적이다. ​​​​청담 도산공원에 까르띠에 love 팔찌 제작 위치한 애슐리 라운지. 알도 치풀로가 디자인한 까르띠에 주얼리와 함께 공개된 아트북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 ‘러브’, 사실은 이별의 슬픔에서 태어났다? 알도 치풀로가 디자인하고 까르띠에가 제작한 최초의 러브 브레이슬릿 중 하나. 브레이슬릿의 안쪽에 알도 치풀로의 시그니처가 각인되어 있다. 1969년Nils 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전용 스크루를 이용해 팔찌를 채우는 것으로 유명한 ‘러브’ 브레이슬릿. 뜻만 보면 치풀로가 사랑에 단꿈에 빠져 있을 때 디자인했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이별의 아픔 속에서 탄생한 디자인이란 사실을 아는지. 1969년 당시 부인과의 이혼으로 큰 상처를 받았던 그는 사랑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추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를 붙잡아 둘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사랑과 추억을 ‘잠가 버려서’ 달아나지 까르띠에 love 팔찌 제작 못하도록 한다는 아이디어에 도달하였고, 전용 스크루 드라이버로 나사를 조여 착용하는 파격적인 브레이슬릿이 탄생하게 되었다. 물론 그 의미도 파격적이지만 주얼리를 특별한 날에만 착용하는 기존 상식과 달리, 매일 언제 어디서든 분실 위험 없이 지닐 수 있게 만들고자 했던 그의 생각은 당대 모더니즘의 영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알도 치풀로가 디자인한 러브 브레이슬릿의 광고 이미지, 1970년. 당시 디자이너의 이름을 광고에 어필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 Cartier까르띠에 뉴욕 카탈로그 이미지. 1978-1979년​​​‘러브’ 브레이슬릿을 자세히 보면 접합부의 나사screw를 그대로 드러낸 것은 물론이고, 이를 모티브로 여러 개의 스크루 문양을 드러낸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현대미술가인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의 작품 ;에 영감을 받아 그가 ‘O’를 약간 비튼 까르띠에 love 팔찌 제작 것을 재치있게 반영하기도 했다. 또한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나사는 까르띠에의 히스토리와도 연관이 있다. 유럽에서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알베르토 산토스 뒤몽Alberto Santos-Dumont, 1873~1932이 당시 시계를 편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그의 친구인 루이스 까르띠에가 손목시계를 만들어 준 것이다. 뒤몽은 1904년, 최초로 손목시계를 찬 사람이었다. 그때 시계의 베젤 위에 나사를 그대로 드러내는 디자인은 알도 치풀로의 ‘디자인은 기능의 일부여야 한다’는 신념과도 연결된다. 당시 까르띠에 뉴욕의 마이클 토마스 회장은 그의 비범함을 알아보았고, 그를 디자인 팀으로 영입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전까지 이렇게 디자이너의 이름을 광고에 등장시켜 어필하는 것이 알도 치풀로 때 처음이었다는 것.​​​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알파벳 'O'를 나사 까르띠에 love 팔찌 제작 모티프로 표현한 옐로우 골드 LOVE 브로치, 1973년Photo Steven DeVilbiss © Assouline​​​디자인은 기능의 일부여야 합니다. 그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기능과 디자인이 함께할 때 항상 성공적인 아이템이 나오게 됩니다.알도 치풀로​​이것은 그저 못이다, 저스트 앵 끌루의 탄생 ​네일 브레이슬릿, 1971년옐로우 골드Nils Herrmann, Cartier Collection © Cartier​​​​‘저스트 앵 끌루’는 못을 한번 휘감은 디자인이 특징이다. 서양 문화사에서 ‘못Clou’은 오랜 시간, 예수가 십자가에 박혔던 못을 의미하며 위대한 희생을 상징했다. 알도 치풀로는 기독교 서적을 읽다가 인류에 대한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희생정신에 감동을 받게 되었다. 록 오페라 ;를 본 그는 그 감정을 더욱 증폭시켜 네일 브레이슬릿을 디자인하게 되었다. 까르띠에는 그가 디자인한 초기 모델인 네일 브레이슬릿을 좀 더 다듬어 까르띠에 love 팔찌 제작 2012년, 까르띠에 165주년 기념으로 ‘저스트 앵 끌루’를 선보였다.​​뉴욕이 좋아! ‘알도 아메리카노’로 불린 디자이너스콜피오 펜던트와 네일 브레이슬릿을 착용한 알도 치풀로. 1977년. © Photo Oscar Buitrago,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Renato Cipullo​​알도 치풀로는 1942년, 나폴리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자랐다. 그의 집안은 아버지와 형 역시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주얼리 디자이너 집안’이었다. 1959년,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 치풀로는 뉴욕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흠뻑 매료되었다. 1960년대 미국은 반전과 평화를 외치는 젊은 세대들의 혁명 시대이자 소련을 라이벌로 우주 과학 경쟁을 펼쳤던 ‘기술 낙관의 시대’였다. 치풀로가 활동하던 시대적 배경은 주얼리 디자인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다. 부를 과시하는 주얼리, 금고 속에서 모시던 주얼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착용할 수 있으면서도 충분히 멋스러운 까르띠에 love 팔찌 제작 주얼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1970년대 뉴욕은 디스코가 열풍이었고, 과감한 스타일의 패션과 볼드하고 볼륨감 넘치면서도 착용감이 편리한 주얼리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당시 뉴욕의 문화예술계에는 앤디워홀이 있었다. 그가 즐겨 가던 ‘스튜디오 54’는 사교 클럽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여기에 자주 가던 이중 하나가 바로 알도 치풀로였다. 그는 미국의 문화를 동경하고, 사랑했다. 오죽하면 ‘알도 아메리카노’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으니까 말이다.​​​​(왼) 알도 치풀로가 디자인한 브레이슬릿의 광고 이미지, 1970년 (오) 알도 치풀로가 디자인한 백개먼(Backgammon) 펜던트의 광고 이미지, 1973년​​(왼) 나사 모티프와 비슷한 디자인이 인상적인 이어 클립. 옐로우 골드, 크리소프레이즈, 오닉스, 1973년 (오) 나사 모티프와 비슷한 디자인이 인상적인 브레이슬릿, 18K 옐로우 골드, 카닐리언. 1972년​​​​애슐리 라운지 전경 및 아트북 이미지 ​​​1969년, 까르띠에 love 팔찌 제작 치풀로는 까르띠에에서 ‘러브’ 브레이슬릿을, 1971년 평범한 못이 손목을 감싸는 모습의 ‘네일’ 컬렉션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74년 독립하여 다양한 주얼리 디자인을 발표했고, 1978년 미국보석협회에서는 그에게 미국에서 채굴한 스톤을 세팅한 컬렉션(현재 스미소니언 재단 소장)을 의뢰하기도 했다. 그는 당대 가장 사랑받았던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던 것과 동시에 오랜 시간 변하지 않는 디자인의 가치를 표현했던 ‘타임리스’ 디자이너였다. 안타깝게도 1984년, 마흔이 갓 넘은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디자인과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알도 치풀로의 예술 세계와 일대기가 더욱 궁금하다면, 그의 아트북을 참고해 보자. 도산공원에 위치한 애슐리 라운지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글 | 디자인프레스 이소진 수석기자자료 제공 | 까르띠에 참고 | 김영애 (現 이안 아트 까르띠에 love 팔찌 제작 컨설팅 대표) 아트 클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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